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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식

모발이식 수술의 역사

by 헬메신 2023. 7. 3.

 

M자 탈모, 정수리 탈모, 소아청소년 탈모, 유전성 탈모 등 오늘날 탈모로 인한 모발이식 수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모발이식은 신체 어느 부위나 적응 가능합니다. 다만 그 수가 가장 많고 거의 영구적인 뒷모발을 공여부로 선택하여 필요한 부위에 나눠주기 됩니다.

모발이식의 방법은 크게 비절개 수술과 절개 수술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모발이식수술 또한 예전과 달리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발이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가 궁금합니다.

 

[ 모발이식 수술의 역사 ]

◆ 1897년 

두피 조직이 손상된 부위(흉터)를 감추기 위해 수술을 통해 머리의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옮겨졌다. 이것은 모발이식을 위한 최초의 전조가 되는 시술로 간주된다.

◆ 1926년

처음으로 두피축소술이 시행되었다.

1931년

처음으로 프랑스 의사 Passot는 모발이 있는 두피 일부를 탈모 부위에 옮겼으며, 이것이 최초의 모발이식술로 믿어지고 있다.

1939년 

일본인 피부과 의사인 Shojui Okuda는 모발이식술에 대한 그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작은 주사침을 이용하여 만든 이식 부위 내로 이식 편을 삽입하는 기술은 최근의 기술과 유사하다.

1940년대

의사 James B. Hamilton은 남성형 탈모에 대하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의 작업은 일반적 탈모로 안드로겐 이론을 지지하였고, 나아가 식별과 분류를 위하여 지금도 사용하는 헤밀턴 탈모 차트를 개발하였다.

1960년대 

의사 Norman Orentreich는 1950년대 초부터 말 사이에 그의 연구를 통해 모발이식술의 정립과 보급에 대해 명성을 얻었으며 1959년에 문헌을 발표하였다. 그는 '공여부 우위(donor dorminace)'의 이론을 발전시켜, 모발이식 편을 후두부에서 정면 탈모 부위에 이식하였다. 이식 편들은 보전성이 유지되었고 원래의 부위에서와 똑같이 작용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소개된 펀치 이식 편 또는 'plugs'는 정면 헤어라인 모습이 논에 심어진 모의 모양이나 인형모발처럼 보였다. 이 기술은 많고 작은 흉터를 공여부에 남겼다. 두피 축소는 정면의 이식을 위해 귀중한 이식 편을 절약하기 위해서 통상 실행되었다.

1990년대

의사 Bobby Limmer는 모발이식술의 현대적 기술을 개발하는데 공헌하였다. 이 기술은 한 번에 1,000~3,000개의 이식 편을 이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공여부 띠를 고배율로 확대하여 검사한 뒤 자연적으로 생긴 모낭단위그룹으로 분리하는데 각각은 1~4개까지 모발을 가지고 있다.

1998년 

처음으로 모발이식에 대하여 전문의 면허증이 주어졌다.

2000년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 모발증식, 복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05년

모발이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은 수술한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결과를 얻고 있다.